수험생일 때 ‘사피엔스’를 왜 읽었냐고 하면... 그냥 궁금했어요. 너무 많이 들어본 책이고, 인류 이야기라길래 뭔가 있어 보였고, 솔직히 좀 멋있어 보이고 싶었던 것도 있었어요. 근데 막상 읽기 시작하니까, 이건 그냥 책이 아니더라고요. 진짜 미친 듯이 커다란 질문을 던지는 거예요. “너는 누구니?”, “지금 하는 이 공부는 뭘 위한 거니?”, “우리가 진짜로 믿고 있는 건 뭐지?” 이런 질문들이 책 속에서 쏟아졌고, 저는 앉은 자리에서 멍하게 몇 장을 그냥 넘겼던 것 같아요. 그래서 이 글은 ‘사피엔스’를 처음 접한, 딱 그때의 저처럼 버겁고 혼란스럽고 근데 또 이상하게 끌리는 마음으로 쓰는 리뷰예요. 완벽한 요약도 아니고, 교양서처럼 차분하지도 않아요. 그냥 읽으면서 느꼈던 것들을 솔직하게 털어놔볼게요.
인간이 특별해진 진짜 이유는 뭘까
책의 첫 시작부터 머리를 한 대 맞은 기분이었어요. ‘인지혁명’. 우리는 왜 다른 동물들과 달라졌는가에 대한 대답이 그 단어에 있었죠. 하라리는 이렇게 말해요. 인간은 ‘허구’를 믿는 존재라고. 돈, 종교, 국가, 브랜드... 이 모든 게 사실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지만, 우리가 믿기 때문에 현실이 된 거라고요. 저는 이걸 읽고 한참 책을 덮고 멍했어요. 지금까지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모든 게 갑자기 허물어지는 기분? 그때 딱 떠오른 게 ‘수능’이었어요. 수험생인 나도 매일 상상 속 무언가를 믿고 살고 있잖아요. 대학을 가면, 인생이 바뀔 거라는 거. 취업이 잘 될 거라는 거. 다 확신은 없지만 어쨌든 다 같이 믿고 있는 이야기. 그래서 그 이야기를 현실로 만들기 위해 다들 매일을 버티고 있는 거잖아요. 그게 인간의 힘이라면, 조금은 안심되더라고요. 나 혼자 이상한 거 아니구나. 그냥 인간이라서 그런 거구나. 아무도 정답을 모르면서 각자 믿는 이야기 하나씩 들고 사는 거예요. 그리고 그 이야기들이 모여서 이 사회가 만들어진 거고. 하라리가 하는 말은 어렵지도, 딱 잘라지지도 않았어요. 그냥 낯설고 되게 날카롭고... 근데 어쩌면 가장 현실적인 말이었어요. 이 챕터 하나로 이 책이 왜 그렇게 유명한지 알 것 같았어요.
농업혁명은 축복이었을까
솔직히 이 파트 읽으면서 약간 화났어요. 우리가 알고 있던 농업혁명 이야기랑 너무 다르잖아요. 교과서에선 인간이 정착하고 문명을 만든 위대한 전환점이라고 하죠? 근데 하라리는 “농업혁명은 사기였다”고 해요. 농사 덕분에 먹을 게 많아졌다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사람들은 더 힘들어졌대요. 다양하게 먹던 사냥채집 시절보다 곡물에 의존하게 됐고, 영양도 떨어지고 노동도 훨씬 많아졌다는 거예요. 듣고 보니 말이 되더라고요. 몸도 망가지고, 계급도 생기고, 전쟁도 일어나고... 전부 농업 때문이라니. 와... 고등학교 세계사 시간에 이 얘기 나왔으면 얼마나 재밌었을까요? 하라리는 이걸 ‘밀의 음모’라고 표현해요. 인간이 밀을 길들인 게 아니라, 밀에 인간이 길들여졌다는 거죠. 진짜 이거 보고 한참 생각했어요. 수험생 때 내가 왜 이렇게 힘들었는지도 문득 연결됐어요. 우리가 선택한 게 아니라 선택당한 길을 걷고 있는 기분이랄까. '사피엔스'는 이런 식으로 머리뿐 아니라 가슴도 후벼파요. 문명이라는 게 단지 발전이 아니라, 희생의 연속이라는 거. 이건 시험엔 안 나오지만, 인생엔 진짜 필요한 이야기 같아요.
역사도 결국 믿음의 산물이다
마지막 챕터 쯤 읽으면서는 좀 멍했어요. 하라리는 계속 얘기해요. 우리가 만든 거의 모든 시스템은 믿음에서 비롯됐다고요. 그걸 처음엔 “그래서 뭐 어쩌라고?” 했는데, 읽다 보니까 생각이 너무 많아졌어요. 예를 들어 회사. 그냥 사람 몇 명 모여서 일하는 거잖아요. 근데 로고 하나, 철학 하나 만들어지면 거대한 존재가 되잖아요. 대학도 그래요. 그냥 건물에 교수랑 학생이 있는 공간일 뿐인데, 우린 거기에 모든 의미를 쏟아붓고 있어요. 이걸 ‘신성화’라고 부르더라고요. 믿음을 넘어서 숭배하게 되는 거. 공부하면서도 똑같은 생각 들었어요. 지금 내가 믿고 있는 게 진짜 내 생각일까? 아니면 그냥 사회가 만든 환상에 내가 갇혀 있는 걸까? 너무 무겁죠. 근데 하라리는 이런 얘기를 피하지 않아요. 오히려 직설적으로 던져요. 그래서 이 책이 좋았어요. 나를 생각하게 만들거든요. 진짜로, ‘사피엔스’는 수능 국어 지문에 나와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논리적이고 치밀해요. 하지만 동시에 너무 감정적이고 인간적이에요. 수험생인 내가 이 책을 만난 건, 공부가 아니라 삶 전체에 대한 질문을 다시 하게 만들었기 때문이에요. 그리고 그런 질문은, 진짜 어른들도 못하는 거니까. 지금 하는 이 고민이 절대 작은 게 아니라는 걸 알려줘요.
수험생에게 ‘사피엔스’는 조금은 버거울 수 있어요. 하지만 한 줄 한 줄, 내 머리로 받아들이려고 노력하다 보면 어느 순간 뭔가가 ‘훅’ 들어와요. 그리고 그때부터는 멈출 수 없어요. 이 책은 지식을 주는 책이 아니라, ‘생각’을 줘요. 그리고 그 생각은, 시험이 끝나도 계속 머릿속에 남아요. 언젠가 여러분도 문득 이 책의 한 문장이 떠오를 날이 올 거예요. 그날을 위해, 언젠가는 꼭 한번 읽어보셨으면 좋겠어요.
'책 리뷰' 카테고리의 다른 글
힘든 날들을 위로해주었던 심리학 기반 한국 자기계발서 소개 (1) | 2025.06.17 |
---|---|
직장인의 퇴근길을 위한 에세이 추천 (1) | 2025.06.16 |
20대 독자에게 인기 있는 요즘 책 소개 (에세이, 자기계발서, 소설) (0) | 2025.06.16 |
성해나 작가 신작 《혼모노》 리뷰 (박정민 배우 추천작!) (1) | 2025.06.12 |
직장인 출퇴근길 베스트 도서 추천 (하루 한 장 고전 수업, 아주 작은 습관의 힘,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 (7) | 2025.06.12 |